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르나르 베르베르 (문단 편집) === 우려먹기의 달인 === 베르베르의 경우 소설 속에서 하나의 발상을 지지할 독창적인 부가 요소들이 심각하게 모자란다. 《[[개미(소설)|개미]]》 이후의 작품은 사색적인 부분은 《개미》에서 발전이 없고 기교적인 부분은 오히려 퇴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. 데뷔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《개미》에서 쓴 소재를 끊임없이 재사용하는 점을 볼 때 그의 저서에서 보이는 우려먹기는 과거에 계속 안주하려는 것에서 온 부작용으로 보인다. 요컨대 새로 소설을 쓸 때 50% 정도를 새로운 발상으로 채운다면 50%는 예전에 써먹었던 것들을 [[Ctrl CV]]해서 내용을 메꾸는 방식이다. 좀 심하게 말하자면 [[양판소]]의 [[도장 찍기]]에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.[* 양판소는 1~2달마다 소설을 찍어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베르베르는 연간 단위로 소설을 내는 데도 이 모양이니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.] 이게 베르베르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심화되는데, 이는 여러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겹치는 소재도 많이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. 실제로 별 심각성을 못느끼는 사람들 특징을 보면 베르베르의 소설을 많이 읽지 못한 사람들이다. 사실 그 책에 나온 소재가 다른 여러책에 재탕되었는데도 다른걸 안읽었으니 모르는 것이다. 반대로 베르나르의 대부분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려먹기를 욕한다.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재탕한 소재가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. 다만 이는 세계관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. 초기작인 《개미》와 《[[타나토노트]]》는 SF로서나 소설로서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었다. 허나 이런 괴상한 집필 방식 때문에 어쩐지 최신 작품일수록 소설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. 《타나토노트》의 후속작인 《[[천사들의 제국]]》은 전작의 주제를 반복하는 것에 그쳤고, 《[[파피용(소설)|파피용]]》의 경우 [[공상과학]]소설의 진부한 [[클리셰]]들을 [[오마주]]한 수준(그래도 SF 마니아가 아닌 일반인 입장이라면 꽤 읽을 만하다). 결국 《[[신(소설)|신]]》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누적되어왔던 우려먹기 문제가 제대로 폭발하고 만다. 어느 정도인고 하니, 밑에 서술되어 있는 베르베르의 클리셰 목록에 있는 항목이 전부 다 쓰인다. 게다가 내용 자체도 [[성경|성서]], [[시드 마이어의 문명]], 기타 역사책들을 적당히 잡탕한 것에 불과하다. 오죽하면 "문명 팬픽을 무려 6권이나 쓴 초월자"라는 소리가 나오겠는가(물론 이것도 문명을 모르고 읽으면 초중반까진 읽을만하다). [[문명하셨습니다]] 상태에 면역. 그리고 2021년에는 아예 대놓고 신작 이름을 '문명'이라 지었다. [include(틀:스포일러)] 우려먹기의 예를 들자면 《신》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는 아이템[* '큰 숫자의 인식=더욱 고차원의 개념에 대한 깨달음'이라는 개념이다.]은 이미 단편집 《나무》에서 써먹었던 것을 다시 써먹은 것이다.[* 단, 《나무》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'어린 신들의 학교'는 애초부터 다음에 쓰게 될 작품(=신)을 위한 습작으로 썼다고 언급하고 있다. 근데 숫자의 상징체계 이야기는 개미, 타나토노트 시절부터 계속 언급됐던 걸 보면...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다.] 단발성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실 《타나토노트》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개념이고 작가는 맨 처음 저 개념을 도입했을 때부터 [[힌두교]]의 사상체계에서 빌려왔다고 밝히고 있지만, 일단 그 인용 자체가 '사람의 인식에 따라서 세계가 변화한다' 라는 몇백년은 지난 [[인식론]]([[정신승리법]] 항목에 나오는 그것)에 기반한 자의적인 인용인데다가 기성 철학의 인용이라기엔 저 체계를 넘어선 다른 철학 체계의 인용은 전혀 없으며 그 힌두교 철학 체계의 인용마저 작가가 《타나토노트》에 소개한 그 수준을 계속 재탕하는 수준에 불과하다.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우려먹기를 통해 작가의 최근작에 급격히 발상의 밀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. [[웃음]]도 단편집 《파라다이스》에 나오는 '농담이 태어나는 곳'이라는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한 연장선상에 불과하며, 《잠》은 영계에서 꿈으로 스킨만 바꾼 타나토노트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수준. 다른 예로, [[개미]]에 나오는 유토피아의 개념 중 하나가 "성씨는 불필요 하다"라는 것으로, 이 개념은 [[파피용]]에서도 그대로 나온다. 작중 대사에 따르면 '성씨라는 건 필요없고 그냥 이름만 가지고 에드워드 1호, 존슨 8호 이런 식으로 불리는 게 훨씬 편하다.'라나. [[파라다이스]]의 단편 "영화의 거장"에서 또다시 등장하고, 이번에는 정확한 근거가 드러나는데, 성씨는 흑역사를 드러내기 때문에 과거를 잊어버린 유토피아가 되기 위해서는 성씨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.[* 예를 들어서 우주선 내에 "존"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30명이 있으면 먼저 등록한 사람이 존-1 을 가지게 된다(예를 들면 제일 먼저 등록한 사람 존-1, 2번째 존-2 ).] ~~에드워드나 존같은 흔한 이름은 대체 몇호까지 가야 되는거지~~ ~~[[103683호]]~~ 여담으로 [[파피용]]이라는 소설에서는 14만4천명의 사람[* 144라는 숫자 또한 이곳저곳에 우려먹는다. 《신》에서 이 수를 이용한 14만 4천, 1만 4천4백 등의 단위로 흥정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, 《제 3 인류》에서도 실험실에서 탄생한 실험체의 수가 144를 이용한 단위로 떨어지기도 한다. 또한 《제 3 인류에》에서 우주로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도 14만4천명이다~~[[파피용(소설)|대놓고 자기 작품 패러디]]~~][* 14만4천명은 성경 요한계시록에서 네 천사들이 심판하기 전에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'하나님의 인'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이다. 각 지파별로 12000명씩 12지파를 모두 더하면 144000명이다.]들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서 떠나는데. 그 행성의 명칭이 [[103683호]]이다. 다만 이는 그냥 작가 본인이 독자들에게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했을 공산이 높다. 요컨대, [[드래곤 라자]]의 주인공인 후치와 제미니를 [[피마새]]에서 가명으로서 재등장시킨 것처럼, 일종의 팬서비스에 해당하는 것. 다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작품의 신선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건 여전하다. 사실 나무나 파라다이스 같은 단편집들은 베르베르의 메모장같은 것으로 파라다이스 머릿말에서 여기 나오는 이야기가 장편소설의 모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적혀있기도 하다. 그런데 이렇게 되면 메모장을 소설이라 이름 붙인 다음 돈 받고 팔았다는 것이라... 나무의 표제작인 '가능성의 나무' 같은 경우는 정말 아이디어 노트다.[* 다만 장편이 워낙 매너리즘에 절어있는 탓에, 이런 [[http://m.dcinside.com/board/hit/15720|아이디어 모음 단편집이 장편보다 재밌다]]는 평가도 있다. 개인적인 평가라 절대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.] 어찌 보면 이러한 '우려먹음'은 그의 책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, 마치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어 보인다(신에서 나오는 '판'의 나무 참조). 다만 자신이 썼던 지식이나 책들을 그냥 자기가 새로운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창고라는 시선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